vol. 10 고소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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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바람을 붙잡고 싶어 종이의 물성과 시간을 파고든 소녀는, 이제 우리 땅의 천연 소재를 지키기 위해 두 팔 걷어붙인 예술가가 되었습니다. 설치미술가이자 브랜드 ‘소미당’을 이끄는 고소미 작가님은 자신의 결핍을 응시하던 시선을 바깥으로 확장해, 사라져가는 전통의 시간을 오늘로 엮어 나가요. 고소미 작가님을 상징하는 실 ‘소미사’에는 버려지는 한지 파지를 일일이 자르고 꼬아온 인고의 시간이 담겨 있습니다. 그 실을 다시 촘촘하게 니팅하는 과정에는 내면을 곱씹는 치열함에 전통 농가의 생산자들을 걱정하는 마음까지 깃들죠.

작가님의 작은 어깨가 짊어졌을 고독한 시간이, 이제는 우리를 조용히 보듬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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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작가님과 브랜드 ‘소미당’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한지, 소창, 삼베와 같은 한국의 자연 소재를 주로 사용하며 조형 작업을 이어가는 설치 예술 작가입니다. 

그동안 순수 예술 영역에서 활동해 왔으나, 제 작업이 사람들의 삶 속에서 실질적인 쓰임을 얻기 시작하며 자연스럽게 공예 작가로도 불리고 있어요. ‘소미당’은 작품이 지닌 감각과 메시지를 일상 가까이서 나누기 위해 만든 브랜드입니다. 

가방, 수건, 로브처럼 손에 닿는 사물을 통해 자연 소재의 매력을 전하고 있죠. 때로는 작가로서 작업 세계에 깊이 몰두하고, 때로는 동료들과 일상 사물을 기획하며 예술과 생활을 잇는 여러 활동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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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작가님의 작업에서 ‘공예적 쓰임’을 발견했던 계기가 궁금합니다. 

오랜 시간 공들여온 작업 중, 삶에 쌓인 흔적에 따라 변화하는 인간의 형상을 표현한 ‘다양체’ 시리즈가 있습니다. 언젠가 한 건축 회사와 협업을 하다가 다양체 작업물 안에 전구를 넣어 조명으로 활용해 보자는 제안을 받았어요. 처음에는 작품 자체로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거 같아서 마음이 복잡하기도 했는데, 막상 시도해 보니 주변 반응도 좋고 저도 작품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게 되더라고요. 작품이 사람들 곁에서 여러 모습으로 머물며 비로소 다양체로 완성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후로 견고하게 구분해 두었던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조금씩 허물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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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한지는 작가님의 작업 세계를 지탱하는 중요한 재료이죠. 어떤 매력에 이끌려 오랜 연구를 지속해 오셨나요? 

한국화를 전공하던 고등학생 시절, 저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바람’과 같은 존재를 그리고 싶었습니다. 

한지에 그림을 그린 뒤 종이가 공기 중에 흔들리는 찰나까지 작품에 담으려 했죠. 하지만 당시 선생님께서는 종이를 배접해 평면으로 고정해야만 작품으로서 가치가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때부터 종이의 물성 자체가 예술이 될 수는 없을까 하는 물음표가 생겼어요. 

답을 찾기 위해 종이를 깊이 연구하고 싶었지만, 당시 한국에는 종이와 한지에 대해 연구할 방법이 많지 않아서 일본으로 건너가 화지(和紙)를 공부하자고 마음먹었습니다. 한지와 화지 모두 식물 섬유로 만들어진 종이이니 재료의 근원을 파고들다 보면 서로 통하는 지점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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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일본 유학 시절은 작가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처음에는 이우환 선생님이 계셨던 타마 미술대학교에 진학했는데, 커리큘럼이 디자인 중심적이라 재료의 본질을 파고들고 싶은 갈증을 해소하기에는 조금 거리가 있다고 느꼈어요. 

그러던 중 우연히 관람한 전시에서 다나카 히데오 교수님의 작업을 만났고, 이분이야말로 제 나침반이 되어주실 분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결국 다시 입시를 준비해 교수님이 계시는 무사시노 미술대학교로 옮겼고, 학부 수업도 병행하며 섬유에 대한 이해를 탄탄하게 채웠어요. 또 일본 각지의 화지 산지에서 몇 달씩 머물며 종이 제작의 전 과정을 몸소 익히기도 했고요. 그 혹독했던 시간 덕분에 지금은 재료를 직접 제작하고 물성을 자유롭게 테스트하며, 저만의 독창적인 작업 방향을 구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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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작업 노트에 ‘지속가능성’ 키워드가 자주 등장합니다. 작가님의 재료를 대하는 마음가짐에서 비롯되었을 거 같아요. 

재료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겪고 나면 함부로 쓸 수가 없어요. 장인분들의 노고를 떠올리면 실 한 올 조차 버릴 수 없어서, 가위질도 조심스럽더라고요. 원단의 끝단도 잘라내지 않고 그대로 사용해요. 

그리고 작업하며 버려지는 자투리를 최소화하기 위해 직조 원단으로는 직선 형태 디자인을 구현하고, 곡선이 필요할 때는 원단을 실로 풀어 니팅 기법으로 작업을 해요. 거창한 환경 보호 의식에서 시작되었다기보다, 재료가 너무 소중해서 아껴 사용할 방법을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속가능성이라는 가치와 맞닿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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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소미사(小魅絲)라는 실도 직접 만들어 사용하시죠. 한지를 꼬아 실을 만드는 시도가 너무 놀라워요. 

고등학생 때부터 한지에 수묵 드로잉을 많이 했어요. 불안할 때면 일기를 쓰듯 종이 위에 감정을 쏟아냈죠. 

그렇게 쌓인 파지들이 방 한가득이었는데, 제 감정이 담긴 흔적이라 차마 버릴 수가 없더라고요. 그러다가 한국의 지승 공예에서 힌트를 얻어 한지를 자르고 물레에 돌려 실로 짜보았어요. 당시 교수님께서도 그거야말로 너의 흔적이고 너만의 재료이니 계속 작업을 해보라고 격려해 주셨고요. 

그 후 오랜 연구 끝에 소미사 만드는 방법을 발전시켰고, 직조와 니팅 방식 등 다양한 기법으로 확장되어 제 작업의 근간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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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작가님이 만드는 재료와 작품에는 언제나 깊은 서사가 서려 있네요. 

저 개인의 결핍을 들여다보고 해소해 가는 과정에서 작업을 시작하기 때문일 거예요. 

대중들과 만나면서는 작품 속 서사도 더 다양해졌습니다. 작업 의뢰를 받을 때마다 같은 작품을 복제하듯 만들어 드리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쇼룸에는 70~80% 정도 완성된 작업을 두고, 의뢰인의 삶과 공간이 지닌 시간을 인터뷰하여 나머지를 함께 채워 나갑니다. 사용자의 이야기가 더해질 때 비로소 작품이 완전해진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완성된 작품은 단순한 물건을 넘어 소장자의 삶 일부가 되어 오래도록 곁에 머물게 될 거예요. 


Q. 재료에 색을 입힐 때도 자연의 시간과 흔적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거 같아요. 

재료가 본래 품고 있던 바탕색인 ‘소색(素色)’을 좋아해요. 

자연에서 온 순수한 하얀빛을 지키기 위해 염색 과정에서도 소색의 본질을 해치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제 작업의 팔레트에는 바탕이 되는 소색, 먹을 다루며 익힌 깊은 먹색, 삶을 지탱하는 기운의 땅색(갈색), 그리고 하늘의 변화를 담은 쪽색, 이렇게 네 가지 핵심 색상으로 이뤄집니다. 감물이나 커피 같은 천연 재료로 염색한 천은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색이 조금씩 변하는데, 저는 그 모습을 결함이 아니라 시간이 스며드는 과정으로 받아들여요. 물론 기업과 함께하는 작업에서는 일정한 결과물을 내기 위해 화학 염료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선택지를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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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일본에서 전통 소재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 마주한 한국의 생산 현장은 어떠했나요? 

일본에서 익힌 노하우를 우리 한지, 소창, 삼베 농가에 적용해 보고 싶었지만, 현실적인 장벽이 높았습니다. 

전통 방식인 ‘외발뜨기’로 제작한 한지를 원한다고 요청드렸을 때, “그렇게 하면 남는 게 없어.”라는 고단한 대답이 돌아왔어요.

제작자분들도 한국 닥나무를 사용하고 화학 풀 대신 황촉규(닥풀)를 직접 키워 짜내는 전통 기 전통 기법을 그대로 활용하고 싶지만, 엄청난 노동력을 요구해서 그 가치에 맞는 대가를 받지 못하는 구조가 장인 분들을 한계로 내몰고 있었던 거죠. 

생산자의 자부심과 전통 소재의 역사와 시간을 지켜가기 위해서는 구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Q. 그래서 어떤 방법을 떠올리셨어요? 

대중적으로 쓰일 보급형도 물론 필요하지만, ‘이것이 우리의 진짜 한지’라고 내세울 만한 고품질의 전통 작업도 반드시 지켜져야해요. 그래서 한지 농가에 종이의 등급을 매기는 방법을 꾸준히 제안드렸습니다. 전통 방식을 고수해 정성껏 만든 최상급 한지는 그 가치에 걸맞은 높은 가격을 책정하고, 공정을 단순화해 생산성을 높인 종이는 저렴하게 보급하여 농가의 수익 구조를 안정화하는 방식이에요. 

다행히 제 진심이 닿아 현재 안동과 전주의 한지 농가에서는 저만을 위한 ‘A등급’ 전통 한지를 별도로 제작해 주고 계세요. 

한지뿐만 아니라 강화도 소창, 안동 삼베 농가에도 결과물을 등급화하는 방법을 계속 이야기 나누고 있고, 올해는 함창 의 실크 장인분들과도 같은 맥락으로 협업을 시작할 예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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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전통 재료를 지키기 위해 안동에서는 직접 대마 농사까지 짓고 계신다고 들었어요. 

안동포(삼베)는 수확부터 실을 뽑기까지 꼬박 1년을 기다려야 얻을 수 있는 귀한 재료입니다. 게다가 워낙 수공이 많이 들어 수익성이 낮다 보니 장인분들도 점차 사라지고 있죠. 삼베가 단순히 수의나 이불용에 머물지 않고, 현대적인 예술품으로서 무한한 가능성을 지녔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어 안동을 자주 찾았는데, 그러다가 어르신들로부터 농사 비용조차 나오지 않는다는 말씀을 듣게 되었어요. 어르신들이 풍년이든 흉년이든 생계 부담 없이 농사를 지속하실 수 있도록 약 2,000평 규모 대마 농사를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대마는 씨를 뿌리면 석 달 만에 쑥쑥 자라기 때문에, 제가 하는 일은 기술적인 농사라기보다 그 곁에서 마음을 다해 응원하고 지지하는 것에 가까워요. 


Q. 그런 역할까지 발 벗고 나서는 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기 위해 작업을 시작하지만, 그 이야기를 담아내는 소재는 결국 사회적 기반 위에서 탄생하니까요. 작가로서 오래도록 목소리를 내려면 전통소재들을 지켜내는 일이 필요했어요. 


Q. 설치미술가로서, 또 소미당의 대표로서 작가님이 도달하고 싶은 최종적인 지표가 궁금합니다. 

지극히 사적인 고민과 결핍을 채우기 위해 만든 작품들이 많은 이의 공감을 얻게 되면서 개인의 문제를 넘어 공동의 서사가 되어 가고 있다고 느껴요. 앞으로는 한 성인이자 예술가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사회적 책임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해 보려 합니다. 

우리 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를 예술적 사고로 풀어내어 제 작품이 누군가에게는 단단한 지지가, 또 누군가에게는 깊은 위안이 되기를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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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미 작가 작품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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