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11 황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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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원 작가는 나무를 깎고 옻칠을 입혀 숟가락과 여러 조형적 오브제를 만듭니다. 주로 숟가락을 다루지만, 그 과정은 하나의 ‘원’을 완성해 가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손으로 만드는 원은 컴퍼스로 그린 거 같은 정확한 형태가 될 수 없으니, 작가의 마음에 들어차는 둥근 모양이 되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고 하는데요. 얼핏 미지근하게 느껴지는 기준이지만, 그 ‘적당함’은 얼마든지 깊어질 수 있다는 걸 작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깨달았습니다. 

자연과 사람을 유심히 바라보며 눈에 담은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보고, 작업을 하다 부족함이 느껴질 땐 시간 들여 공부하는 황경원 작가. 그의 손끝에 모인 감각이 앞으로 얼마나 더 아름다운 원을 만들어낼지, 또 과감히 원의 모습에서 벗어날지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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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우드 카빙 작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어요?

축구를 오래 했어요. 선수 생활을 그만두고 나니 운동할 때 쏟았던 에너지가 갈 곳을 잃은 느낌이더라고요.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에 여러 원데이 클래스를 다녔는데, 그중에서도 우드 카빙이 가장 몰입할 수 있는 작업이었어요. 처음 수업을 듣던 날에는 실내에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는 환경이 낯설어서 저만 완성하지 못하고 집에 돌아와서 마무리했거든요. 그런데도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고 방황하던 에너지가 제자리를 찾는 느낌이 들었어요. 어느덧 6년째 작업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Q. 축구와 우드 카빙은 서로 다른 에너지를 쓸 것 같은데요. 업을 전향할 때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오히려 축구와 우드 카빙이 꽤 비슷한 감각이라고 느껴요. 축구할 때도 움직임에 깊이 몰입하면서 주변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했고, 또 잘하는 편이었거든요. 그래서 축구를 그만두게 되더라도 결국은 무언가를 반복하고 파고드는 일을 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축구하며 깨달은 게 있다면, 무엇이든 완전히 익히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고 오랫동안 다져온 기본기도 10년쯤 지나면 다시 새롭게 느껴진다는 거예요. 우드 카빙을 시작할 때도 그 지난한 과정을 겪게 될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비장한 각오를 다지기보다는 눈앞의 작업에만 집중하려 했어요. 그래서인지 아직 이 일이 나의 업이라고 확신해 본 적은 없어요.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있는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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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주로 숟가락 형태의 작업을 하시죠. 왜 숟가락이 좋았나요?

처음에는 주변 요리하는 분들에게 필요한 도구를 만들어 드리는것부터 시작했어요. 그때의 숟가락은 기능적인 물건이었고, 좋은 형태에 대한 기준도 제 안이 아닌 바깥에 있었죠. 그러던 어느 날, 컵 위에 작은 숟가락들이 나란히 놓인 모습을 봤는데 그게 마치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숟가락을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하나의 존재로 보게 된 거죠. 이후로 형태를 다양하게 변형해 보거나 크기를 키워 여러의미를 담아보기도 하면서 작업이 훨씬 더 흥미로워졌어요. 지금은 ‘숟가락’이라는 키워드 아래, 기능적인 작업부터 조형적인 작업까지 폭넓게 시도하며 그 경계를 확장해 나가고 있습니다.



Q. 작가님만의 숟가락 세계관이 형성되고 있는 거 같아요. 일상 속 어떤 장면들에서 작업의 영감을 얻으시나요?

보통은 식물이나 들꽃의 단순한 구조를 유심히 바라봐요. 민들레처럼 머리 부분에 형태를 만들어 꽃처럼 표현하기도 하고, 바람에 흔들리는 강아지풀을 보며 손잡이의 방향이나 흐름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또 사람들에게서도 영감을 받아요. 실루엣이 둥글고 두루뭉술한 아이들을 보면 움직이는 형태를 기억해 두었다가 작업에 풀어보기도 하고요. 

자연과 사람을 바라보다 보니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어요. 키와 생김새가 다른 존재들이 어우러져 있는 장면처럼, 머리를 맞대거나 나란히 눕고 서로 기대어 있는 숟가락의 모습을 떠올려봐요. 그렇게 하나의 작품 안에서도 머리가 맞닿아 있거나 손잡이가 기울어진, 여러 숟가락이 함께 존재하는 형태도 탄생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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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한 작업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도 궁금합니다.

평소 떠오르는 단어를 메모장 위에 적어두거나 형태나 느낌을 간단히 그려둬요. 그렇게 일상에서 쌓인 감각들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올 때, 즉흥적으로 작업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고요. 스케치 단계에서는 조금만 빗나가도 느낌이 달라지기 때문에 여러 번 수정하며 형태를 정교하게 잡으려고 해요. 하지만 실제 제작에 들어가면 스케치와 형태가 조금씩 달라질 수밖에 없어서, 그 변화도 유연하게 받아들이면서 중심을 잃지 않으려 하죠. 

제작은 재단 후 큰 여백을 덜어내고 점점 더 세밀하게 깎아나가는 식으로 진행돼요. 지금 제 단계에서는 장비가 많을수록 방향을 잃기 쉬워진다고 생각해서 꼭 필요한 기계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덜어내고 깎는 일은 단순해 보여도 사실 많은 체력과 집중력이 필요한 작업이에요. 그 부분만큼은 자신감이 있어서 다행이에요. 단순한 일도 에너지가 축적된 상태에서 하는 것이 완전히 다른 결과를 낸다고 생각해서, 계속 반복하며 나만의 힘을 쌓아가보려 해요.





84979616132af.pngQ. ‘이쯤이면 완성이다’, 조각도를 멈추는 순간의 기준이 있나요?

사람의 손으로 만드는 일에는 명확한 완성이 없잖아요. 스스로 만족하는 지점을 찾아가는 과정에 가깝죠. 요리할 때 간을 맞추는 것처럼요. 무언가를 더해서 완벽해지기보다 덜어낼수록 충분한 상태를 찾으려 합니다. 나무를 깎다 보면 예상치 못한 결이나 형태가 드러나기도 하는데 그런 티도 실패로 보지 않아요. 처음에는 마음에 들지 않았던 부분도 며칠 뒤 다시 보면 다른 가능성이 보이기도 하거든요. 그런 ’적당함’의 기준은 고정되어 있기보다 매번 조금씩 달라집니다. 작업을 하면서 ‘믿으면 있고, 믿지 않으면 없다’라는 말을 자주 떠올려요. 

결국 중요한 건 외부의 기준이 아니라 스스로 신뢰할 수 있는 내면의 감각이라고 생각해요.





5c4c1ac1b0831.pngQ. 유독 애착이 가는 작업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꽤 오래전부터 만들어온 아기 숟가락을 소개하고 싶어요. 여러 면에서 참 적당하다고 느껴지는 작업이에요. 

기능적으로 아주 특별하지 않아도 편하게 사용할 수 있고, ‘귀엽다’는 감각이 직관적으로 전달돼서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어요. 또 크기가 작아서 클램프로 고정하는 대신 손으로 계속 만지작거리며 만들어야 하므로 손의 감각이 가장 오밀조밀 섬세하게 남아 있는 작업이기도 해요.


Q. 작업을 마주한 사람들의 반응 중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요?

숟가락이라는 사물이 워낙 익숙해서인지 많은 분이 작업을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주세요. 

저 역시 숟가락의 둥근 형태가 가장 먼저 편안함을 전하길 바라면서, 설명보다 직관적으로 와닿는 감정을 전달하고 싶어요.

예전에 작은 숟가락 세 개를 세워 전시한 적이 있었는데, 어떤 분이 그 모습을 보며 자신의 가족이 떠오른다며 구매해 가셨어요. 제 작업이 누군가의 감정에 닿았다는 걸 느끼며 정말 기뻤던 기억이 나요.




d6d1b2baac8f4.pngQ. 작업 과정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모든 과정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봐요. 구현하고 싶은 디테일에 비해 제 기술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면 현실과 타협해서 가능한 선에서 완성할 건지, 시간을 들이더라도 원하는 모습에 가까워질지, 선택해야 하죠. 보통 후자를 선택하는 편이에요. 같은 수준 안에서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작품이라도 깊이를 만들며 변주하고 싶거든요.

그렇게 둘러 가는 것이 맞는 방법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자칫하면 시간이 무제한인 것처럼 느껴져서 하염없이 헤매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더 배우고 쌓아야 할 시기에 있다고 생각해요. 요즘은 멀리에 있다가도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저를 필요로 하는 곳에 응답하고, 다시 길을 떠나는 느낌으로 지내고 있어요.


Q. 그 둘러 가는 길 위에서 무엇을 공부하고 있나요?

전통적인 것을 재해석하는 일에 관심이 많아요. 단순히 옛것의 형태를 닮게 만드는 게 아니라 그 안에 깃든 한국적인 멋을 저만의 방법으로 해석해서 가구나 오브제 같은 조형 작업으로 확장하고 싶어요.

또 옻칠을 3년 정도 공부해 오고 있는데, 이 작업이 제 표현에 더 큰 자유를 열어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표면을 칠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광이나 윤기, 질감 등 다양한 표현을 만들어낼 수 있거든요. 그런 점에서 옻칠이 제 나무 작업에서 채우지 못했던 부분을 보완하고, 표현의 폭을 넓혀주는 매체라고 생각해요. 또 옻칠을 조형적으로 활용하면 입체작업으로도 확장할 수 있어서 앞으로 제가 펼쳐가고 싶은 영역을 더욱 자유롭게 만들어줄 수 있을 거 같아요.


Q. 수많은 원형을 깎아가며,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에도 어떤 변화가 있었을 거 같아요.

둥근 형태에 도달하는 과정은 오히려 굉장히 예민하고 날카로워요. 그 모순적인 감각이 마치 수행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단순한 형태를 만들기 위해 온 힘을 쏟다 보면, 자연스럽게 일상에 발을 붙이게 되는 거 같아요. 붕 뜨지 않고 조금 더 단단하고 겸손한 태도로 살아가게 되죠. 숟가락을 깎는 동안 저도 점차 둥글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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