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는 위로의 힘을 지닙니다. 성글게 짜인 문장 위에 우리 삶을 놓아둘 수 있어요. 포 작가님을 만나고 나니, ‘Poetry of metal’이라는 소개글이 온전히 와닿았습니다. 스튜디오 포의 기물은 작고 반짝이지만, 자연의 생애를 닮아 겸허합니다. 그리고 작가님의 열띠고 고독한 시간이 담겨 새로운 물성을 지녀요. 본디 차가워야할 금속이 온기를 머금은 채로 우리 곁에 놓이죠. 마치 시처럼요. 작은 경전철을 타고 숲을 향해 갔던 날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Q. 작업을 금속으로 쓰는 시(詩)라 표현하셨어요.
일상 단편에 놓이고 누군가의 손을 거치며 어떤 정서를 던지는, 한 편의 시와 같은 기물을 만들고 싶어요. 시는 짧은 글 안에 긴 서사가 응축되어 있잖아요. 끄트머리만 남겨도 전 상황을 다 알게 하죠. 시를 읽을 때면 어떤 문장에서 한참 머물러있기도 하는데요, 그런 시간이 모이니 자연스럽게 ‘시를 쓰고 싶다’라는 생각을 한 거 같아요. 글 대신 몸으로 시의 직관을 만들고 있죠. 때로는 고되지만 제게는 이 방식이 맞아요.
Q. 작업실을 곁한 숲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시죠. 자연물이 작품으로 탄생하기까지는 어떤 과정을 거치나요?
거의 매일 숲으로 나가 산책을 합니다. 피어나는 것, 만개한 것, 자연물의 모든 생애를 가만히 바라보며 함께하려고 해요. 그중에서도 특히 벌레가 갉아 먹고 말라가는 이파리, 비에 젖어 물방울이 맺힌 바위, 속이 비어가는 나무껍질 같은 장면에 마음이 갑니다. 눈에 띄는 순간이 있으면 밀랍이나 왁스로 바위 표면을 본떠 와 다관으로 만들기도 하고, 한 마리 벌레가 된 듯 금속 잎을 파내 구멍을 내기도 하죠. 마음에 드는 낙엽 형태를 찾기 위해 몰드를 여러 번 수정하고요. 기본적인 제작 방식이지만, 그 안에 마음을 담으려다 보면 한없이 어려워지기도 해요.
Q. 이번에 늬은에서 소개하는 스튜디오 포의 작업에는 가을이 담겨 있어요.
계절의 변화는 제게 큰 이벤트예요. 숲 옆에 살다 보니 계절이 더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매일매일이 달라서 놓칠세라 아까울 정도죠. 가을의 면면이 담긴 밀보리와 은행잎이 달린 다식 꽃이, 나뭇잎 모양의 주석 플레이트를 선택했어요.

Q. 금속뿐만 아니라 한지 작업도 하고 계시지요.
재료에 경계를 두지는 않아요. 발표하지 않았을 뿐 나무로 가구를 만들고, 흙, 테라코타, 아크릴 작업도 해요. 기계 장치를 이용해 움직임을 구현하는 키네틱 아트도 시도하고요. 그 여러 재료 중 하나가 한지인 거죠.
Q. 한지는 어떤 점이 특별한가요?
장인의 한지는 손을 대는 순간 멈칫하며 저절로 감탄사가 나와요. 이 한지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오래도록 정성을 들였을지, 그리고 얼마나 외로웠을지가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그 자체로 작품인 것을 오히려 망치게 되진 않을까, 두려울 정도예요.
최근 전시를 준비하며 한지로 부채를 만들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바람의 기운을 부채로 표현하려 애쓰면서, 손끝으로 장인의 감각을 헤아릴 수 있었어요. 저 역시 그런 기운이 담긴 작업을 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Q. 순은으로 대나무살을 만들어 합(盒) 형태를 구현한 시도도인상적입니다. 어떻게 시작한 작업인가요?
새로운 도전을 특별한 일로 여기지는 않아요. 해보고 싶고 해야한다고 생각하면 일단 시작해요. 그리고 수많은 실패를 거듭하며 배워갑니다. 죽공예에 금속을 접목하는 일은 오래전부터 마음에 두고 있었는데, 마침 근처에 계신 선생님께 죽공예를 배울 기회가 생겼어요. 겨울에는 작업의 시작점인 댓살을 준비하기 위해 눈 덮인 밭에 대나무를 베러 가기도 했습니다. 그 후 제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은으로 댓살을 만들어야 했어요. 은판에 댓살 무늬를 넣고, 0.2mm 두께로 가늘게 자르는 방법을 찾기까지 꼬박 1년이 걸렸습니다. 지금은 예전보다는 시간이 덜 들지만, 여전히 긴 인내가 필요한 작업이에요. 시간이 더 많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인생은 짧으니, 무엇을 하지 않을지 무엇에 집중할지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겠죠.


Q. 앞서 말씀하신 ‘작업에 담는 마음’은 어떤 건가요?
정서가 담겨 있어야 공예라고 생각해요. 기계가 만든 것과 수공예를 구분 짓는 건 작가만의 감각과 판단, 순간의 미감이죠. 가끔은 제 초기작에 담긴 진심이 그립기도 해요. 간절했거든요. 너무 좋고 행복해서 애가 타던 감정이요. 그때의 엉성함마저 사랑스럽게 느껴져요.
Q. 작가님의 정서는 인간적이면서 자연을 닮았어요.
산책하다 보면 한 나무에 달린 잎도 똑같이 생긴 게 하나 없어요. 잎맥이 다 다르니까 말라가는 모습도 모두 다르죠. 사람도 마찬가지로 각자의 잎맥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연스럽게 휘어지고 꺾이는 모습 그대로요. 낙엽을 바라보듯 사람들을 관찰하면 각자의 고유함에 감탄하게 됩니다.
Q. 하지만 살다 보면 자꾸 조바심이 나요.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떻게 평정심을 유지하시나요?
저도 똑같아요. 어떤 날은 한 걸음 나아간 듯하다가, 또 어떤 날은 세 걸음 물러서죠. 그러다 다시 반걸음 나아가기도 하고요. 중요한 건 ‘내가 욕심을 냈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것일 거예요. 사회에서 내가 어떤 위치를 차지하느냐보다도, 나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 나에게는 작업실과 재료가 있고, 그 누구도 작업하지 말라고 하지 않으니 내일도 작업을 이어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행복하다는 걸 되새겨요.
Q 올해의 목표가 있다면요?
작업에만 나의 시간을 모두 쓰지 않는 것. 남편과 함께 여유를 즐기는 시간을 조금 더 늘리고 싶어요.
Q. 작가님은 한국 공예계에 어떤 존재로 남고 싶으신가요?
저에게 그런 질문을 하시다니 잘못 찾아오신 거 같은데요? (웃음) 거친 돌길을 기어가듯, 산의 가파른 벽을 오르듯 묵묵히 작업을 해왔을 뿐인데, 어느새 주변에 비슷한 결을 가진 자연물 작업자들이 하나둘 생겼어요. 그럴 땐 내가 공예계에 어떤 한 장면을 만드는 데 작은 역할을 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그저 자연이 좋고, 한국 자연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싶은 마음은 모두 같을 테니, 각자의 정서와 서사를 잘 다듬어서 이 씬을 더 풍요롭게 만들었으면 해요.
이 질문의 진짜 답은 제가 할머니가 될때까지 작업해 쌓인 매일의 하루하루가 대신 말해줄 것 같아요. 지금은 그저 저처럼 홀로 조용히 작업하는 작가들에게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하자고 전하고 싶어요. 세상은 결국 그런 사람들을 알아봐 줄 거예요.


시는 위로의 힘을 지닙니다. 성글게 짜인 문장 위에 우리 삶을 놓아둘 수 있어요. 포 작가님을 만나고 나니, ‘Poetry of metal’이라는 소개글이 온전히 와닿았습니다. 스튜디오 포의 기물은 작고 반짝이지만, 자연의 생애를 닮아 겸허합니다. 그리고 작가님의 열띠고 고독한 시간이 담겨 새로운 물성을 지녀요. 본디 차가워야할 금속이 온기를 머금은 채로 우리 곁에 놓이죠. 마치 시처럼요. 작은 경전철을 타고 숲을 향해 갔던 날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Q. 작업을 금속으로 쓰는 시(詩)라 표현하셨어요.
일상 단편에 놓이고 누군가의 손을 거치며 어떤 정서를 던지는, 한 편의 시와 같은 기물을 만들고 싶어요. 시는 짧은 글 안에 긴 서사가 응축되어 있잖아요. 끄트머리만 남겨도 전 상황을 다 알게 하죠. 시를 읽을 때면 어떤 문장에서 한참 머물러있기도 하는데요, 그런 시간이 모이니 자연스럽게 ‘시를 쓰고 싶다’라는 생각을 한 거 같아요. 글 대신 몸으로 시의 직관을 만들고 있죠. 때로는 고되지만 제게는 이 방식이 맞아요.
Q. 작업실을 곁한 숲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시죠. 자연물이 작품으로 탄생하기까지는 어떤 과정을 거치나요?
거의 매일 숲으로 나가 산책을 합니다. 피어나는 것, 만개한 것, 자연물의 모든 생애를 가만히 바라보며 함께하려고 해요. 그중에서도 특히 벌레가 갉아 먹고 말라가는 이파리, 비에 젖어 물방울이 맺힌 바위, 속이 비어가는 나무껍질 같은 장면에 마음이 갑니다. 눈에 띄는 순간이 있으면 밀랍이나 왁스로 바위 표면을 본떠 와 다관으로 만들기도 하고, 한 마리 벌레가 된 듯 금속 잎을 파내 구멍을 내기도 하죠. 마음에 드는 낙엽 형태를 찾기 위해 몰드를 여러 번 수정하고요. 기본적인 제작 방식이지만, 그 안에 마음을 담으려다 보면 한없이 어려워지기도 해요.
Q. 이번에 늬은에서 소개하는 스튜디오 포의 작업에는 가을이 담겨 있어요.
계절의 변화는 제게 큰 이벤트예요. 숲 옆에 살다 보니 계절이 더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매일매일이 달라서 놓칠세라 아까울 정도죠. 가을의 면면이 담긴 밀보리와 은행잎이 달린 다식 꽃이, 나뭇잎 모양의 주석 플레이트를 선택했어요.
Q. 금속뿐만 아니라 한지 작업도 하고 계시지요.
재료에 경계를 두지는 않아요. 발표하지 않았을 뿐 나무로 가구를 만들고, 흙, 테라코타, 아크릴 작업도 해요. 기계 장치를 이용해 움직임을 구현하는 키네틱 아트도 시도하고요. 그 여러 재료 중 하나가 한지인 거죠.
Q. 한지는 어떤 점이 특별한가요?
장인의 한지는 손을 대는 순간 멈칫하며 저절로 감탄사가 나와요. 이 한지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오래도록 정성을 들였을지, 그리고 얼마나 외로웠을지가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그 자체로 작품인 것을 오히려 망치게 되진 않을까, 두려울 정도예요.
최근 전시를 준비하며 한지로 부채를 만들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바람의 기운을 부채로 표현하려 애쓰면서, 손끝으로 장인의 감각을 헤아릴 수 있었어요. 저 역시 그런 기운이 담긴 작업을 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Q. 순은으로 대나무살을 만들어 합(盒) 형태를 구현한 시도도인상적입니다. 어떻게 시작한 작업인가요?
새로운 도전을 특별한 일로 여기지는 않아요. 해보고 싶고 해야한다고 생각하면 일단 시작해요. 그리고 수많은 실패를 거듭하며 배워갑니다. 죽공예에 금속을 접목하는 일은 오래전부터 마음에 두고 있었는데, 마침 근처에 계신 선생님께 죽공예를 배울 기회가 생겼어요. 겨울에는 작업의 시작점인 댓살을 준비하기 위해 눈 덮인 밭에 대나무를 베러 가기도 했습니다. 그 후 제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은으로 댓살을 만들어야 했어요. 은판에 댓살 무늬를 넣고, 0.2mm 두께로 가늘게 자르는 방법을 찾기까지 꼬박 1년이 걸렸습니다. 지금은 예전보다는 시간이 덜 들지만, 여전히 긴 인내가 필요한 작업이에요. 시간이 더 많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인생은 짧으니, 무엇을 하지 않을지 무엇에 집중할지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겠죠.
Q. 앞서 말씀하신 ‘작업에 담는 마음’은 어떤 건가요?
정서가 담겨 있어야 공예라고 생각해요. 기계가 만든 것과 수공예를 구분 짓는 건 작가만의 감각과 판단, 순간의 미감이죠. 가끔은 제 초기작에 담긴 진심이 그립기도 해요. 간절했거든요. 너무 좋고 행복해서 애가 타던 감정이요. 그때의 엉성함마저 사랑스럽게 느껴져요.
Q. 작가님의 정서는 인간적이면서 자연을 닮았어요.
산책하다 보면 한 나무에 달린 잎도 똑같이 생긴 게 하나 없어요. 잎맥이 다 다르니까 말라가는 모습도 모두 다르죠. 사람도 마찬가지로 각자의 잎맥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연스럽게 휘어지고 꺾이는 모습 그대로요. 낙엽을 바라보듯 사람들을 관찰하면 각자의 고유함에 감탄하게 됩니다.
Q. 하지만 살다 보면 자꾸 조바심이 나요.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떻게 평정심을 유지하시나요?
저도 똑같아요. 어떤 날은 한 걸음 나아간 듯하다가, 또 어떤 날은 세 걸음 물러서죠. 그러다 다시 반걸음 나아가기도 하고요. 중요한 건 ‘내가 욕심을 냈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것일 거예요. 사회에서 내가 어떤 위치를 차지하느냐보다도, 나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 나에게는 작업실과 재료가 있고, 그 누구도 작업하지 말라고 하지 않으니 내일도 작업을 이어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행복하다는 걸 되새겨요.
Q 올해의 목표가 있다면요?
작업에만 나의 시간을 모두 쓰지 않는 것. 남편과 함께 여유를 즐기는 시간을 조금 더 늘리고 싶어요.
Q. 작가님은 한국 공예계에 어떤 존재로 남고 싶으신가요?
저에게 그런 질문을 하시다니 잘못 찾아오신 거 같은데요? (웃음) 거친 돌길을 기어가듯, 산의 가파른 벽을 오르듯 묵묵히 작업을 해왔을 뿐인데, 어느새 주변에 비슷한 결을 가진 자연물 작업자들이 하나둘 생겼어요. 그럴 땐 내가 공예계에 어떤 한 장면을 만드는 데 작은 역할을 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그저 자연이 좋고, 한국 자연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싶은 마음은 모두 같을 테니, 각자의 정서와 서사를 잘 다듬어서 이 씬을 더 풍요롭게 만들었으면 해요.
이 질문의 진짜 답은 제가 할머니가 될때까지 작업해 쌓인 매일의 하루하루가 대신 말해줄 것 같아요. 지금은 그저 저처럼 홀로 조용히 작업하는 작가들에게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하자고 전하고 싶어요. 세상은 결국 그런 사람들을 알아봐 줄 거예요.